開港期日朝関係の実像と統理交渉通商事務衙門 : 山田荒治事件(1887年)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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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항기 조일관계 실상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 야마다 아라지(山田荒治)사건(1887年)을 중심으로
  • カイコウキ ニッチョウカンケイ ノ ジツゾウ ト トウリ コウショウ ツウショウ ジム ガモン ヤマダコウチ ジケン 1887ネン ヲ チュウシン ニ
  • 開港期日朝関係の実像と統理交渉通商事務衙門 : 山田荒治事件(一八八七年)を中心に
  • カイコウキ ニッチョウ カンケイ ノ ジツゾウ ト トウリ コウショウ ツウショウ ジムガモン : ヤマダコウチジケン(イチハチハチシチネン)オ チュウシン 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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抄録

본 논믄은 개항기 조선의 대 일본 외교를 ‘전략적’이라는 시각에서 재구성하기 위한 작업 의 일환으로 1887년에 일어난 야마다 아라지 사건의 실태를 밝히고 사건에 대한 통리교섭통 상사무아문 (외아문)의 자세와 역할을 검토한 것이다. 야마다 아라지 사건이란 대마도 출신인 야마다가 외아문에 고용되어 소안도 주변 해역 에서 어업 활동을 시도한 일본 어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둔 행동이 조일 간의 외교 문제로 비 화된 사건이다. 본 논문에서는 주로 일본 외무성에 남겨진 부책「朝鮮政府雇山田荒治該政府 発給漁税節目ヲ以テ我漁船ニ対シ徴税一件」의 분석을 통해 야마다의 사정과 계획, 징세 실 태, 김옥균 암살 계획과의 관련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 결과 외아문의 야마다 고용은 개항기 부산, 대마도인들의 특유한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외아문은 小通事 출신 조선인들을 야마다와 함께 현지에 파견해 징세 실시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고 그들의 현지 재량을 넗 게 허용했다. 그 연장선 상에는 외아문이 그들을 당시 멀리 小笠原島에 추방되어 있었던 김 옥균 암살에 이용하려고 했던 상황도 확인되었다. 외아문은 난항한 「朝日通漁章程」교섭 과정에서 야마다 사건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외 아문의 의도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복잡한 구상으로 전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외 아문의 정책들에 부딪친 일본 외무성은 그 저의를 통찰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노련한 조선 외교에 일본 정부가 휘둘리는 상황도 개항기 조일관계 실상의 한 측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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